본문 바로가기
세상의_모든사건사고

오카다 유키코, 베르테르효과를 불러 일으킨 비운의 아이돌 사건

by 미쓰 2021. 1. 21.

오카다 유키코, 베르테르효과를 불러 일으킨 비운의 아이돌 사건

 


사토 카요

출생: 1967. 08. 22
사망: 1986. 04. 08

 

 

유난히 눈동자가 맑고, 웃을때 보조개가 살짝 들어가

 

귀여운 느낌을 주는 청순가련한 그녀의


예명은 오카다 유키코이며, 애칭으로 윳코라고

 

불려졌다.

 

 

 

 

 

 

 

 

 

그녀는 성격적으로 약한 힘을 띄어서


소속사에서 힘든 연예계 생활을


이겨내라는 의미로 유키코(희망)라는


예명을 붙여줬다고 한다.

 

한때, 청순하고 귀여운 외모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녀는


남겨진 사진과 영상으로만

 

추억할 수 있게되었다.

 


윳코는 만 18세의 나이로


열아홉살이 되던 해,

투신하여 어린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기때문이다.

 

 

 

 

 

 


무엇이 그토록 그녀를 괴롭게하여


어린 윳코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을까?

 


그림실력이 특출났던 윳코는 학업에


크게 집착하지않던 화가가 되길 꿈꾸던 평범한


소녀였다.

 

어느날,

 

자신의 캔버스 그림을 무대로

 

 


펼쳐나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것을


다짐한 뒤로부터

 

반드시 가수가 되겠다는 열정을가지고


신인 발굴 프로그램, 오디션에


참가하였다.

 

 

 

오디션과 콘테스트의 성과는


매우 좋았으나,


부모님과 선생님의 극심한


반대가 컸다.


대회에 나갈 생각이면


학생기록부를 써주지 않겠다는


선생님의 반대에도 무릎쓰고


무단결석을 하고 대회에 참가하게된다.

 

 

 

 

 


부모님의 억센 반대에도


유키코는 포기하지않고 방안에서


식음전폐를하며 가수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고 한다.

 

유키코를 감당하지 못했던 부모님은


결국 3가지 조건을 걸게된다.


1. 교내 시험에서 학년 1등급 따기
2. 중부지역 모의고사에서 전교 5등안에 들기
3. 높은 학군의 시립 고등학교에 합격하기

 

 

 

포기할것이라 생각했던 부모님의 예상과는 다르게


윳코는 놀랍게도 3가지 조건을 모두 해냈다.

 

훗날, 공부를 하는 비법을 말하길


셔텨를 누르듯 머리속에 넣어


교제와 문제집을 통째로 외웠다고한다.


만 16세 되던 해에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가수의 꿈을 이뤘지만 꿈을 이룬지 고작 2년만에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였다.


청순하고 귀여운 외모에


아름답고 맑은 목소리이나,


어딘가 모르게 서글픈 감성이


깃든 그녀의 매력적인 음색은


많은 사람들로하여금 빠져들게하였다.


소속사는 우수한 아이돌을 배출한 선뮤직으로


마츠다 세이코(당대최고인기 아이돌)의 직속 후배인

 

 

 

마츠다 세이코

 

 


오카다를 제2의 마츠다 세이코로 밀었지만,


언제나 자신감넘치고 쾌활하며 당당한 그녀와는


분위기가 다른 유키코였다.

 

데뷔하고나서는 소속사 직속 선배이자


톱아이돌인 마츠다세이코와 비교되며


"포스트 마츠다세이코","제 2의 마츠다 세이코"라고


칭해져왔으나,

 

 

 

윳코는 "역시 자신은 자신일 뿐이니까,


마츠다 세이코를 따라가고싶지않다"고 말했다.

 

이렇게 힘든 연예계 생활에서도


꿋꿋히 확고한 생각을 가졌던 윳코였다.


데뷔초에는 반짝이던 눈으로


방긋방긋 웃고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딘가 모르게 많이 지쳐보이는 모습이였다.

 

 


생전 마지막 음반 활동이였던


입술 네트워크 무대를 보면


확실히 안색이 어두웠으며


지친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입은 웃고있지만,


눈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것같은 모습이였다.

 

실제로 데뷔 후

 

 


많은 인기를 얻었고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야만했다.


잠은 고작 하루 3~4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고 전해졌다.

 

평소 완벽주의의 성격 탓에


노래도 연기도 뭐 하나 놓칠수 없었던 그녀는


'요즘은 하루에 20시간 정도는 일하고 있어요',


라고 밝히기도했고,

 

 

 

 

 


1985년 12월, 과로로 입원하기도 하였다.

 

유키코와 함께 합숙했던 선후배와 동료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연예활동은 물론 시험 기간동안엔


거의 자지않을정도로 공부 또한 소홀히 한적이 없다고밝혔다.

 

게다가 살이 쉽게 찌는 체질이라


다이어트도 철저히 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스케줄을 다 마치고

 

 


늦게 귀가할때에도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과


잡다한 일을 다 하고나서


어느새 보면 바닥 위에서 자고 있었다고한다.

 

데뷔 2년째가 되던 198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 '금지된 마리코'가


성공적으로 종방했으며, 직전 발매한 싱글


'입술 네트워크'가 오리콘 첫 1위를 획득했으며

 

 


사건 하루 전에는 사진집인 '비너스의 탄생'이


막 발매되는 등 인기에 박차를 가하던 참이었다.

 

4월 5일에는 전국 콘서트가 시작되었고,


4월 10일에는 TV드라마 촬영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렇게 촉망받는 아이돌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자기 삶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고말았다.

 

욧코가 사망 직전에 녹음한 음반 앨범이 있지만


발매가 무산되면서 훗날 공개된 곡이다


그래서 노래는 있는데 무대가 없다..

 

 

 

 

 


소속사 빌딩에서 투신 직후 그녀의


처참한 모습이 매스컴에 모자이크 없이 그대로


노출되는 사고를 겪게 된다.


직전에 1차 자살 시도가 있었다는 소식을 들은


기자들이 소속사 건물에 몰래 잠입해 있다가


투신이 일어나자 무자비하게


현장을 생중계 해버린 것이다.


무리한 취재 욕심이 불러일으킨


대참사라고 할 수 있다.

 

기자들의 욕심으로 일어난


최악의 보도들은 전파를 타고


전국에 생중계 되어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옐로저널리즘 시기였던 일본은


어느 기자는 좀 더 자극적인 연출을 위해


시신의 자세를 훼손했다는 소리도 있다.


인기 아이돌이였던 유키코의 자살은 생중계됨과


동시에 사회문제로 번져나갔고,

 

팬들이 뒤따라 자살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 현상은 "윳코 신드롬"으로써


베르테르 효과와 같은것이었다.

 

사회적 문제가 커짐으로써


한동안 오카다 유키코에대한 방송이


일절 보도되지 않기도 하였다.

 

 


연예계 선배들이 기억하는 윳코는..


“유키코는 혼자서 우울해지는 타입,


나랑 닮았다고 생각해서 자주 얘기를 걸곤 했다.

 

굉장히 머리가 좋은 애라


더욱이 혼자서 고민에 빠져있었던 게 좋지 않았던 걸 수도.


여러 가지 상담에도 응했었지만


그게 어떤 내용인지는 말할 수 없다.


너무 고민하지마 얘기했었는데...


죽을 거라면 그냥 연예계를 그만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신인으로 데뷔했을 때부터 연약해 보이는 여자애라


괜찮은 걸까 하고 걱정했었다.


대기실에서 이유도 모른 채 울고 있을 때도 있었고..

 

 


유키코는 감수성 또한 매우 풍부했다고 한다.


유키코의 유서는


소속사에 있었지만, 소속사 사장은


유서 공개 여부를 두고


일기에 여자 선배를 욕하는


내용이 있었다고 얘기하며 정확한


유서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가


결국 가족들에게도 유서를 전체적으로


공개하지않았다고 한다.

 

 

 

 

 


오카다 유키코의 사후,


그녀의 어머니는 오카다의 일기와 메모,


그림 및 사진을 엮어'오카다 유키코-사랑을 주세요'


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인터넷으로 떠도는 글로는


유키코의 아버지는 그녀의 사후, 주식이 망해서


그녀의 유품까지 모두 버려야했고, 홧병으로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생전 그녀의 연고지였던


이치노미야 시에는 그녀의 언니만이 살고 있다고 한다.


작업을 같이했던 다케우치 마리야는 이것이 거짓일 거라고


얘기했으나, 몇 해 전에는 기억이 오래되서 사실여부를 자신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아래는 스위스에 관한 내용의


일기장 그녀의 묘비에


적힌 말이기도 하다


만약 긴 휴가를 받는다면 유화를 그리고 싶어요・・・
퍼스트 비디오를 찍을 때 갔던 스위스의 산등성이를
새하얀 캔버스에 그리고 싶어요・・・

 

 


어릴 적 어떻게든 화가가 되고 싶었던 나.
지금 보통의 나로 돌아가 캔버스에 색을 입혀가면서
더할나위 없는 평온함을 느낄 거예요.


자살 원인에 대해선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하나 아직 정확히 밝혀진바는 없다.


남자, 스캔들, 소속사 선배와의 갈등 등

 

 


연예계의 실체에 대한 환멸같은 감정때문이라고

 

떠들썩하기도 하지만


아마도 그 이유보단,

 

평소 그녀의 성격으로보았을땐,


쉽지않은 연예계 생활은 물론 '유키코'라는 만들어진


상품에 자신을 맞춰야했던 부분이


가장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소속사 직속 선배 마츠다세이코는

 

 


앨범과 콘서트를 열기도하며 여전히 활발히


활동중이다.

 

유키코도 현재 살아있다면

 

53세에 접어든 나이였을테지만


살아있던 기간보다 사후의 시간이 훨씬 더 오랜 아이돌임에도


충성심 높은 당시의 팬들과 사후의 인터넷 매체를 통하여


팬 세대가 존재할 만큼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있다.




반응형

댓글